bener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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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 방문.
2024년 12월 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공항에 차려졌다는 분향소에도 가고 싶어 무안공항에 방문했다. 새해 첫날인데 굳이 사고 현장까지? 라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이 사고는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는 것들이 많았고 1월 4일까지인 국가애도기간 중 갈 수 있는 시간이 이때 밖에 없어 가보기로 했다.
새해 첫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아 일찍 가기 위해 새벽 3시에 무안으로 향했고 인근 칠산대교에서 잠시 해돋이를 본 후 바로 무안공항으로 이동했다. 오전 9시 30분쯤에 도착했는데 원래라면 한산했어야 할 무안공항 주차장에 차가 많아 마음이 무거웠다.
1층 입국장으로 들어가니 전날 설치됐다는 분향소가 바로 보였고 유가족들이 머무는 텐트들도 많이 보였다. 공항에는 우리처럼 조문하러 온 일반인들 외에 공항 관계자들, 공무원들, 방송 관계자들, 유가족 및 유가족 방문자들, 자원봉사자들, 각종 단체 관계자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목적은 다르지만 하나의 사명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꽤 이른 시간이었지만 일찍 조문하러 온 사람들이 있어 분향소 앞에 대기줄이 있었고 10여분 정도 기다린 다음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에서는 모든 조문객들에게 흰 국화 한송이를 나눠줬으며 분향소에 들어가면 국화를 원하는 위치에 내려놓고 1분 정도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세보진 않았지만 모든 희생자의 위패가 만들어졌다고 하며 대부분은 위패 옆에 사진이 같이 놓여 있었다.
쭉 둘러보다보니 어느 일가족 3명의 사진 한 장이 위패 3개와 나란히 놓여있었다. 이번 사고 최연소 희생자가 포함된 야구단 직원 일가족이었다. 인스타그램에도 올린 방콕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 사진을 보니 눈물이 났다. 마지막 여행이 될 줄 알았을까.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나왔다.
분향소를 나와 공항 내부도 둘러봤다. 1층은 전체적으로 유가족들을 위한 텐트로 가득해 공간이나 동선이 복잡했고 대부분의 활동 영역은 2층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1, 2층 모두 여러 단체에서 간식과 간단한 먹거리, 생필품들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들도 많이 보였는데 그걸 보니 대한민국은 위기에는 하나로 뭉치는 힘이 있고 시국이 어수선하긴 해도 시스템 역시 잘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 출국장에 올라가니 마침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현장 브리핑이 이뤄지고 있었다. 잠깐 들어봤는데 모든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이 완료됐다는 내용이었고 그에 관한 Q&A가 있었다. 어느 유가족 남자분이 누나의 유해 일부라도 빨리 보고 싶으니 부탁드린다며 울부짖기도 했는데 여기저기서 훌쩍 거리고 그런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 날은 처음으로 잠깐이지만 유가족들이 순번을 정해 사고 현장을 직접 방문할 수 있다고 했으며 그곳에서 간단한 차례를 지낼 수 있게 해놨다는 그런 얘기도 있었다. 공항을 빠져 나와 사고 현장을 멀리서 직접 보기 위해 공항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이날 유가족들의 현장 방문이 예정돼 있어 그런지 많은 방송 관계자들이 나와 촬영을 하고 있었다. 영상으로만 보던 사고 현장을 직접 보니 무안공항 활주로가 저렇게 긴데 사고가 났다는 것이 참 의아하게 느껴졌고(여러 이유가 겹쳤겠지만) 사고의 직접 원인으로 지목되는 로컬라이저 둔덕도 참 아쉬웠다. 실제로 보니 비행기가 충돌한 둔덕 중간 지점이 크게 파손된 상태였는데 저게 없었더라면 그 뒤에 있는 얇은 외벽과 펜스를 치고 나가 어디선가 멈췄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자체는 피할 수 없었더라도 최소한 지금처럼 거의 모두가 사망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지진 않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어 사고 현장 근처의 펜스쪽에도 가봤는데 이쪽은 상대적으로 일반인들도 많이 모여 있었다. 펜스 주변에는 조문객들이 남긴 쪽지들과 꽃, 음식들이 많이 있었다. 펜스 바로 뒤쪽으로는 사고 당시 폭발과 관성에 의해 비행기 내부에 있던 다수의 물체들이 튕겨나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둔덕까지는 거리가 거의 100~150m는 떨어진 지점이었기 때문에 사고 당시의 충격이 정말 엄청났고 특히 기내 좌석들이 크게 파손된 상태로 있는 것을 보니 거의 모두가 사망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둔덕 부근에는 불에 그을리긴 했지만 기체 꼬리가 크게 훼손되지는 않은 상태로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 사고의 전체적인 모습을 봤을 때 그쪽에 있었던 승무원 2명이 살아난 것은 말 그대로 기적으로 보였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이제 모든 희생자가 유가족에게 돌아가 장례를 마쳤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긴 조사 과정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유가족들이 지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남아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